메뉴 건너뛰기

연혁

연혁

연혁

                                              역사소고(연혁)

 

해남윤씨 시원은 시조 존부 存富 부터육세조 환桓까지는 생존 연대 관직배위 세덕등의 기록은 전 해 오지않고 다만 휘諱자만 전 해 오고 있다. 개인적인 기록은 칠세조이신 록화 綠和 부터이다. 우리선세는 팔세조 광전光琠을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벼슬은 고려 사온직장 영동정공이고 그분의 차자 군기소윤공 (휘단학)에게 내려주신 노비문서(보물483호)가 고려 공민왕3년 (1354) 이였기로 거슬러 올라 추정하면 시조공 (휘존부) 은 고려 제11대왕 문종 (1046년--84년)대로 이때 부터가 해남윤씨의 재세 시원 이라 할 수 있다. 관직의 입안이 탐진(지금의강진)으로되여 우리선대가 강진지역에서 살고있었슴을 입증 하고있다.

해남윤씨 문중은 조선조 인조27년 (1649을축)년 덕정동 추원당( 지방문화제 제29호)을 건립하고 고문서 충헌공입의파산묘제 (해남고산박물관보관)를 통해 문중 형성을 짐작 할 수 있으며 숙종14년 (1688무진) 한천동 영모당 (지방문화재 제28호)을 건립하여 시제향사를 이여 왔고 영조9년 (1733계축)에야 드디어 광후계란 결사체가 창설된것이 해남윤씨문중의 효시오 순조5년 (1805을축)25인의 문원(금구의록)이 실전 된 6세조 환桓 의 묘소를 탐사차 왕심하는 등 순조(1808무진)년 부터는 각 파별로 광후계에 입계 토록 함으로서 명실공히 대문중을 형성 하였다.

광후계로 하여금 제반 문중사 일체를 관리하여 오던 오랜전통이 1981년 (신유)년 10월 중앙종친회가 주관하여 시조공(휘존부)이강 7세조 (휘록화)의 설단과 복잡다단한 시대적 변화와 사회문화적 변천에 부응하여 보다 진취적이고 발전전적인 생각 그리고 대승적 견지에서 1984년 (갑자)년11월10일 대문중을 대종회로 격상 하였다.

조상을 숭모향사하고 종친간에 친목을 돈독히 함으로서 백대 지친 일가로가 로서의 긍지와 책무를 다 하고 있다.

위로